[김태은의 폴리티션!]'빅 소사이어티'의 길, 유승민의 길

'보수의 중도 지향'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대 중반 시작된 영국 보수당의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이다.

'빅 소사이어티'의 중도적 가치를 떠받드는 핵심 이념은 '공감적 보수주의'다. 영국 보수주의의 상징인 대처주의와 달리 경제적 안정과 성장 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 근현대사 권위자인 홍석민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빈곤 감소와 사회정의, 책임화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개발하고 신자유주의 시장과 복지국가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상호부조에 기초한 보다 평등주의적인 '새로운 시민 국가'가 '빅 소사이어티'의 이상적인 비전"이라고 정의한다.

'네오콘(Neocon)'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신보수주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미국 보수진영에서도 중도(center)의 개념이 등장한 때가 있었다. 1962년 중도 보수주의를 표방해 설립된 리펀회(Ripon society)가 사용한 '합리적 중도(Sensible center)'다. 이들은 1964년 대선 당시 미국 신보수주의의 기수가 된 배리 골드워터에 반기를 들며 "골드워터의 보수주의로부터 공화당을 구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리펀회는 공화당의 미래가 극단주의가 아닌 온건주의에 있다며 공화당이 계속 집권하기 위해 온건한 보수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빈곤 완화를 정부의 주요 과제로 보는 등 기존 보수주의와 차별화된 노선을 선보였다. 빈곤층 가정에 정부가 현금을 지급하는 '네거티브 소득세' 도입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1966년 중간선거에서 온건주의를 내세운 공화당 신인 정치인이 대거 원내로 진출하는 기폭제가 됐지만 '합리적 중도(Sensible center)'가 보수주의의 새 조류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이념중립적'인 이름 때문에 지금은 보수와 진보와 관계없이 경제나 사회, 인권, 환경까지 다양한 분야의 정책에 대해 중도적 가치를 상징하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선언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른바 '새로운 보수'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란 그의 지향점에서 잘 드러나지만 아직은 보수주의의 새로운 정의라기보단 사안별 접근 방식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신념 밑바탕에 깔려있는 세금과 복지, 그에 따른 정부의 역할론 등에서는 오히려 진보주의에 기반한 부분도 있다. '유승민의 보수'를 확고히 보여준다는 안보도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미동맹과 천안함 폭침 외에 외교통일에 대한 비전이 뭔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 보수 강경파의 지적처럼 유원내대표에게서 지역(대구)과 소속 정당(새누리당) 이외에 보수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는 데엔 물론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야당의 언어'였다는 지적은 유승민의 모호한 정체성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유원내대표의 정체성을 논할때 떠오르는 인물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다. 1953~1961년 대통령을 역임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온건 진보에 가까웠다.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공화당의 선택이 낳은 '변종 보수주의'라 할 수 있을까.

그는 "길 가운데(중도)에선 누구나 걷거나 뛸 수 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극단으로 치우치면 배수로에 빠져버린다"는 명언을 남겼지만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무늬만 보수', '정당만 보수'란 비난을 받았다.

아이젠하워 이후 골드워터를 기점으로 보수주의의 우경화가 본격화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진보 성향 보수 정치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영국 '빅 소사이어티'가 주는 교훈은 그래서 유승민을 비롯한 한국 보수주의의 새로운 진영에도 의미가 있다. 영국 보수당은 데이비드 캐머론이란 젊은 정치인만을 '상품'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새로운 보수주의의 철학과 정치 이념을 만들기 위해 '싱크탱크'를 두고 행동경제학을 정치에 접목해 보수의 가치를 대중화하는 방법론을 찾았다. 이를 통해 보수주의적 가치가 개인과 집단 간 상호작용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갔다.

또한 중도적 가치뿐 아니라 기존 보수주의의 주류인 대처주의와 일국 보수주의 등의 이념을 다 포용하는 데 노력했다. '빅 소사이어티'란 이름이 보여주듯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끌어안되, 그 기반은 보수주의에 둬 보수당을 이념적으로 분열시키지 않았던 것이 재집권의 성공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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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의 폴리티션!]'빅 소사이어티'의 길, 유승민의 길

[the300]美 아이젠하워 이후 오히려 보수 우경화, 英 '빅 소사이어티'로 보수가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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