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2015-01-05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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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에 관한 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 근로자에 관한 법은 많습니다. 이 법들은 근로자의 근무시간, 임금, 휴가 등 근로자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잘 갖춰져 있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법과 동떨어진 현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1) 근로자 관련 법과 현실의 괴리를 확인하고 2) 원인을 추적하고 3)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연재기간 동안 임금, 근로시간, 휴가, 정년 같은 직장인 이야기에서부터 알바생, 인턴,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등 다양한 근로 현실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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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미혼 여성 이하나씨는 요즘 가족들과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이 많다.
우선 올해로 만 53세를 맞은 아버지의 요즘 얼굴 표정이 좋지 않다. 하나씨를 예뻐하고 가족들과 외식도 자주하던 아버지는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가족들과 말도 잘 하질 않는다.
"아빠가 회사에서 퇴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전해 들었어요. 아빠가 얼마나 힘드실지…. 지난해 정년 60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걸로 아는데 왜 정년이 보장안되죠?. 아빠가 임금이 깎여도 좋으니 60세까지는 회사를 더 다니고 싶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하나씨의 결혼한 두살 터울 언니 하연씨도 임신 때문에 3년째 다니던 방과후 학교교사를 그만뒀다. 사범대를 나온 하연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거듭된 낙방에 시험을 포기하고 초등학교 방과후 선생님으로 일해왔다. 매년 같은 학교에서 재계약으로 일해오던 이씨는 지난해 결혼후 최근 임신을 하게 됐다.
학교에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출산 휴직기간 중 대체선생님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하연씨는 사방으로 알아보다 대체 선생님을 마련했고, 기쁜 마음에 학교에 알렸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얘기는 "사정으로 재계약이 어렵다.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는 말 뿐이었다. 하연씨는 하소연할 때도 없어 동생 하나씨를 붙잡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 남편의 외벌이로 육아비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하다.
하나씨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엔 계약직도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해준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주는 곳은 없더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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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디자이너 |
하나씨의 세살 아래 남동생 이하랑씨는 군대를 제대한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하랑씨는 복학 전까지 5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에 보태겠다는 꿈에 부풀어있다.
하랑씨가 일하는 곳은 대학근처 커피전문점. 30대 후반인 가게주인은 이름난 대기업을 다니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 직접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창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처음엔 커피 맛이 좋아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인근에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요즘엔 파리가 날리다시피 한다. 고육지책으로 커피값을 내렸지만 학생들도 요즘은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폼나는 브랜드 커피를 더 좋아하는 듯 보인다.
하랑씨는 매일 하루 8시간씩, 매달 24일을 일한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시급 5210원, 총 100만320원을 받아야 하지만 경영상황이 어렵다며 시간당 5000원, 96만원을 주고 있다. 하랑씨는 "요즘 손님이 없어 96만원을 꼬박꼬박 받는 것도 미안해져요. 그리고 주변엔 나보다도 못받는 친구들도 많아요"라고 웃었다.
하나씨의 이종사촌 동생인 김현정씨(23). 의상디자인과에 다니는 현정씨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위해 어느 이름있는 패션디자이너 기업의 인턴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패션현장을 배울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출근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매일 오전 9시 출근이지만 퇴근시간은 대중이 없었다.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거나 어떨때는 밤샘 근무까지 해야 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원단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납품처 관리 등 일당백 역할을 해야했다. 정신없이 일했지만 최저임금법도 무시한 30만원이 인턴 급여로 나왔다. 선배 패션디자이너 정직원들도 연봉이 2000만원이 채 안되는 등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정씨는 하나씨에게 "어릴때부터 꿈이던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계속 걸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나씨의 남자친구 박형진(29)씨도 고민이 많다. '청년실업'의 관문을 뚫고 1년전 대기업에 입사할 당시만해도 하나씨와 결혼 계획을 세우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늘 피곤에 쩔어있고, 주말에 얼굴 보기도 힘들다.
하나씨는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며 너무 기뻤는데 오히려 지금은 심정적으로 더 멀어진 것 같다"며 "주중엔 볼 엄두도 못내고 주말에 만나도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말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형진씨는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8시 퇴근한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일이 밀려 밤 10시에 퇴근한다. 가끔 주말에도 잔무가 있을때는 출근해야 할 때가 있다. 형진씨는 주말 근무를 제외해도 매주 64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초과하는 24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줘야하지만 형진씨는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해 야근을 하더라도 수당을 거의 받지 못한다. '포괄임금제' 연봉계약은 야간근로 등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임금제도다. 형진씨는 패기 있는 신입사원답게 2년차 연봉협상때 연장근로수당 얘기를 꺼냈지만 "연봉에 이미 포함됐다"는 얘기만 듣고 돌아서야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엔 근거가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로 인정받아 기업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편법이다. 월급 이외 연장근로수당을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포괄임금제 때문이다.
하나씨도 요즘 눈물이 난다. 취업난을 뚫고 한 경제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다. 하나씨는 싹싹하고 일을 잘해 인사팀 눈에 들었다. 같이 일하는 임원은 "하나씨, 우리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생각이 없나"라고 물어온다.
하나씨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설렌다. 마음 편하게 익숙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일하던 친한 언니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자 결국 그만뒀다.
더욱이 하나씨는 자신이 '2년 계약시 정규직으로 임용해야 한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계약'을 맺었다는 점을 알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맘을 완전히 접었다. 쪼개기 계약은 3·4·6개월 단위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해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방지하는 편법이다.
하나씨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 2월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가서 뒤늦게라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볼까 고민하고 있다.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안들='근로기준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남녀교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최저임금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등 근로자에 관한 법은 많다.
하지만 법이 아무리 정비가 잘 돼 있어도 근로현장에서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빛좋은 개살구'다. 실제로 근로시간과 연장근로수당, 정년, 비정규직(계약직) 보호 등 법과 현실사이엔 괴리가 존재한다.
현행법만 잘 따라도 근로현실은 개선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어려운 경영현실을 들어 현행 근로관련법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도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애로를 인정해 '포괄임금제'를 비롯한 많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다보니 국회에서는 매년 여야 의원들을 중심으로 근로조건 및 근로현실 개선을 위한 법안 발의가 봇물을 이룬다. 개정안들은 △근로시간단축 △휴일·연장근로시 연장근로수당 기준 명확화 △비정규직 처우개선 △파견근로자 차별금지 △최저임금인상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대체휴일제 모든 사업장 적용 등 다양한 근로현장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환노위 소속 한 의원은 "현행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근로현실 개선과 관련한 법안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법안 발의자체로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의제제기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도 지키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법을 개정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까라는 비판도 크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법안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정부기관의 엄격한 법 집행 의지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기업들이 지키기 어려운 비현실적 근로자 관련 법안은 세부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 실현가능하고 효과적 법집행이 가능하도록 정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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