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은, 8년만의 '통안증권 상대매출'…정부 '코드' 시장개입

[the300] 박원석 의원 '유명무실한 규정 끌어와 사실상 직접 시장개입"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제 경제정책포럼 조찬세미나에서 '정책환경의 변화와 통화정책 과제'를 주제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은행이 올해 3월 '회사채 시장 정상화방안'의 일환으로 실시한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상대매출 방안이 정부정책에 예산을 지원하기 위한 '꼼수'로 쓰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앙은행의 '시장 직접개입'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실상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인 '상대매출' 규정을 근거로 무리하게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은은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스스로의 주장에 반해 실제로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이율배반에 빠졌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7일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은이 한국정책금융공사(정금공)를 대상으로 시행한 통안증권 상대매출은 2006년 이후 8년 만이다. 2006년 당시 한은은 생계형 금융채무자 지원을 위해 자산관리공사를 통안증권 상대매출 방식으로 지원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정금공 출연을 지원하기 위해 이에 대한 대출 및 통안증권 상대매출방안을 의결하고 올해 3월 이를 집행했다. 

한은이 정금공에 연 0.5%의 초저리로 약 3조4590억원어치의 돈을 빌려주면, 정금공이 다시 한은이 발행한 통안증권 3조4762억원을 연 3.5%에 매입하는 것. 이 때 발생하는 금리차로 마련된 1000억원 가량을 기업 회사채 발행 지원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한은이 신용보증기금에 직접 출연하지 않고도 정금공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셈이다.

한은의 '공개시장조작규정'에 따르면 한은 총재는 유동성 조절 또는 통화신용정책 운용을 위해 필요할 경우 특정 금융기관 또는 정부출자·출연기관을 상대로 상대매출방식으로 통안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이 같은 규정은 1990년대 초 통화관리를 직접규제 방식으로 집행하던 시절 금융기관을 지정해 통안증권을 강제배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이후 1997년 통안증권 미낙찰분이 발생해도 이를 상대매출 방식으로 소화하지 않도록 완전 공개경재입찰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더 나아가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공개시장조작'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게 박원석 의원 측의 설명이다.

박원석 의원은 "한은이 시장개입 논란이나 통화량 증가, 발권력 동원 등의 논란을 피하면서 정부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통안증권 상대매매 방안을 꺼낸 것"이라며 "금융안정을 구실로 삼지만 사실은 정부예산을 투입해 진행할 사업에 한국은행이 중립성을 잃고 발권력을 동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은의 '회사채시장 안정화 방안'이 회사채 시장의 큰 문제 중 하나인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우려도 내놨다.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되지 않고 정부의 개입으로 지연될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올해 4월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한계기업이 구조조정되지 않으면 국민경제 전반의 성장동력이 저하되므로 채권 금융기관 등이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회사채시장 안정화 방안을 한은이 지원하는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한은이 입으로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정책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웃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며 "구시대의 잔재인 통안증권 상대매매 방식은 공개시장조작규정에서 삭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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