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을 겨냥한 입법인가, 금융소비자를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한도를 취득액이 아닌 시가, 이른바 공정가액으로 계산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8일 국회에 제출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국회 정무위원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무위 소관인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보험회사의 계열사 지분, 즉 '대주주 등이 발행한 주식 및 채권' 투자 한도를 현행 '총자산 3%'로 유지하되 이를 시가로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비롯, 야당 의원 13명이 공동 서명했다.

개정안은 자산운용시 시가를 기준하는 다른 업계와 달리 유독 보험업계만 그보다 낮은 취득액을 기준으로 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민단체 등 지지의견을 바탕에 뒀다. 반면 개정안대로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직접 영향을 받으므로 표적입법이란 반론이 쟁점별로 팽팽히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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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표적입법?= 이종걸 의원실이 경제개혁연대 보고서를 인용,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계열사 지분에 대한 삼성생명의 투자한도는 총자산 3%인 약 4조7000억원(일반계정기준)이다. 현행법상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 중 적은 금액을 기준으로 하므로 흔히 '3% 룰'이라 불린다.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현재 보유분은 2조6000억원이어서 문제가 없지만 재무제표상 가액으로 평가하면 19조1000억조원으로 한도를 훌쩍 넘는다.

문제는 법개정에 영향 받는 기업이 시중 24개 보험사 가운데 삼성생명뿐이란 점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다. 이 때문에 특정기업을 겨냥한 입법은 곤란하다는 신중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도 보험업법 등 금산분리 강화 법안에 대해 "나머지 그룹은 몇 억원으로 해소할 수 있지만 유독 삼성은 몇 조 원의 돈을 들여야 한다. 보편타당한 입법이 아니다"는 반론이 강했다.

이종걸 의원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험업계만 취득원가를 평가기준으로 하는 데 대해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IMF 사태 이후 시장가격으로 기준을 변경하려 했는데, 특정기업이 이미 한도를 초과하고 있었고 그 주식을 팔아야 할 경우 시장 영향을 고려해 그대로 놔뒀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만일 그 특정기업이 삼성이 아니었어도 그대로 놔뒀을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결과적으로 한 기업에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법을 존치할 것이냐, 아니면 비정상인 기준을 정상화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시장 흔들·경영권 넘어간다?= 개정안은 법정비율을 초과한 주식·채권 보유분에 대해 그 20% 이상씩 매년 해소하는 실행계획을 법 시행 후 6개월 내에 수립,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길어도 5년내 초과 보유분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법안 개정시 삼성생명의 계열사 보유지분은 12%, 삼성화재는 6%여서 각각 3%를 초과한다. 특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중 초과분을 해소하려면 주가와 시장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주가하락, 시장 불확실성 등이 후폭풍으로 거론된다. 또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낮아지면 자칫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종걸 의원은 이에 대해 "시장영향 우려가 있어 1년 내 한도초과분을 처리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완화해, 5년 유예기간을 두도록 했다"며 "단 심의 과정에서 5년도 너무 부족하다(짧다)는 의견도 있거나 그것이 타당하다면 충분히 더 여유있게 해 영향을 줄일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시장 영향이 우려된다면 5년이든 10년이든 길게 잡아 해소하면 되지, 그것을 이유로 기준 개정을 반대해선 안된다는 논리다.

이 의원은 또 "삼성전자가 외국인에 넘어가면 어떡하느냔 반론이 있지만 삼성전자 7.2%를 지닌 삼성생명이 최대주주, 2대 주주는 지분율 3% 정도인 총수 일가, 나머지는 1% 미만의 소수 주주들"이라며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통째로 넘어갈 것 같다는 걱정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기우"라고 일축했다.

또 "은행, 저축은행 또는 금융투자업자 등 다른 금융회사가 보유하는 주식 등은 관련 법령에 따라 시가 등을 기준으로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하고 있다"며 보험업법상 취득원가 기준을 재무제표상 가액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반기 정기국회 '뇌관' 될까= 법안 심의가 당장 속도를 내긴 어렵다. 수많은 논란을 안고 있는데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제출된 법안은 의안과를 거쳐 상임위에 회부되고,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상정되더라도 15일 숙려기간을 거쳐 법안소위원회로 넘긴다. 빨라야 6월 임시국회에 논의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6월은 5월에 국회의장이 바뀌고 여야 새 원내지도부가 선출돼 상임위원장 등 하반기 원구성을 진행하는 어수선한 상황이다. 6·4 지방선거 이후 정치상황도 예측불허다.

이례적으로 시급한 법안이면 국회가 열리지 않는 5월에도 상임위를 소집할 수 있다. 신용카드 개인정보유출 대책입법이 그 예다. 하지만 이처럼 상임위를 긴급 소집할 만큼 보험업법이 분초를 다투는 문제인지는 여야 입장이 다르다.

정무위 여당간사 김용태 의원 측은 "절차를 거쳐 법안을 논의하자면 올 하반기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